지난 2월 구글이 정부에 ‘5천 분의 1’ 축척의 고정밀 지도를 해외에 소재하고 있는 구글의 데이터센터로 반출할 수 있도록 한 요청에 대해 이를 허용할 경우 국내 공간정보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공간정보산업협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설문에 응한 공간정보업체 중 90%가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요청은 국내 기업들의 매출과 일자리 창출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협회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글의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신청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정부의 신중하고 균형 있는 결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협회는 구글의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은 지난 2016년 구글에 대한 고정밀 지도 반출 거부 이후 약 9년 만에 다시 이뤄진 것으로 구글의 이번 요청이 탄핵과 대선 정국이라는 국내 정책 리더십의 공백을 노린 ‘꼼수’라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도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구축,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편승해 또 다시 대한민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무상 요구하는 것은 ‘무임승차’ 행위라고 비판했다.
특히,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을 단순한 통상 이슈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 이유로 고정밀 지도는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스마트시티, AR 등 미래 전략 산업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로, 그 보안성과 접근 권한이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점을 들었다.
또한, 해외 반출이 허용되면, 유사한 요구가 북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로 확산될 우려가 크다는 점도 이유로 꼽았다.
김석종 회장은 “정밀지도는 단순한 기술 자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 주권과 직결된 국가 전략 자산”이라며, “지금과 같은 외압에 굴복해 반출을 허용한다면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한,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하면서 ‘중소기업 상생’ 논리를 꺼낸 것도 설득력이 없다”며, “국내 공간정보 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제공하는 가격 대비 구글의 지도 API 제공 단가가 고비용 구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협회는 구글이 한국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을 납부해 온 점도 비판했다.
지난 2024년 기준, 구글코리아가 납부한 법인세는 약 173억 원으로, 주요 국내 기업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한다면 글로벌 기업의 독점은 더욱 심화되고 국내 산업은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정밀지도 반출 요청이 법령에 따라 구성된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에서 충분하고 실질적인 검토를 거쳐야 하며, 정부 부처는 물론 산업계, 전문가, 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이 균형 있게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김 회장은 “미국의 통상 압박에 휘둘려 구글 지도 반출이 이뤄진다면, 이는 국내 6,000여개 공간정보기업과 10만 여 명 기술자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처사”라며, “정부는 구글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건과 관련해 국민과 산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회장 김석종)는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7일까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구글의 고정밀 지도 반출’ 요청과 관련해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응한 회원사 239곳 중 90%가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반면, 찬성은 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8일 밝혔다.
반대 입장 중 매우 반대는 67%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설문조사를 살펴보면, 회원사 중 88%는 지도 반출이 이뤄질 경우 회원사의 장기적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일자리 창출 관련해서도 93%의 회원사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정밀 지도 반출에 따른 우려점으로는 34%의 회원사들이 ‘국가 안보 위협’을 꼽았고, 이어 ‘국내 ICT 산업 붕괴’, ‘중국 등 다른 빅테크 요청 시 부정적 선례’ 순으로 나타났다.
산업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요소와 관련, ‘구글의 독점 형성 및 국내 시장 잠식’을 꼽은 회원사가 30%로 가장 많았고, 이어 ‘무상 유출로 인한 관련 산업의 경쟁력 저하 및 국내 경제적 가치 저하’, ‘규제 및 관련 법 적용에 있어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의 역차별 심화’ 등을 꼽았다.
구글의 요청을 받아 들일 경우 산업계가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관련, 69%에 달하는 회원사들이 기대하는 이익이 없다고 응답했다.
특히, 회원사 과반은 정밀지도 반출 결정 시점에 대해서도 ‘늦춰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50%의 회원사들은 ‘대통령 공백 시기임을 고려해 차기 정부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답했고, 28% 회원사는 ‘결정시기는 무관하다’고 응답했다.
김석종 회장은 “구글에게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내줄 경우 산업계에 미칠 파장에 대한 회원사 우려가 크다는 사실이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며, “정부는 성급한 지도 반출 의사결정이 관련 산업을 황폐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