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은 국가 안보·정치·경제·사회의 문제를 과학기술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제공하는 과정이다. 공공기술개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개발, 더 나아가 인류의 가치와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로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정부는 올해 연구개발 중점투자 방향으로 기존의 ‘혁신주체의 연구역량 강화’, ‘과학기술로 성장동력 기반 구축’,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 개선’과 함께 ‘위기대응 강화’를 추가, 새롭게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코로나 발생 2년의 시점에서 국민들이 열망하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일상으로 회복’은 커녕, 일일 확진자 7,400명, 위중증 환자 1,000명, 사망자 60명을 넘어서고 있다.
선진국이 개발한 백신에 의존한 이런 이상한 ‘위드 코로나 사회’는 R&BD형 기술개발에 주력해 온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코로나 발생 초기인 2020년 3월 백신 개발을 위한 전문가들을 소집하여 OWS(Operation Warp Speed)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아무리 빨라도 18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 백신개발 기간을 빠른 시일 내에 마치기 위해 총 100억 달러에 이르는 연구개발 예산의 신속한 지원을 결정하고 시행했다.
즉, 미국은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첫째 ‘정부의 공격적인 대규모 연구개발 지원’, 둘째 ‘기초과학 및 제약산업 인프라와 네트워크’, 셋째 ‘mRNA 방식 등 혁신을 장려하는 연구개발 문화’ 등이 어울러져 단기간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
미국의 발 빠른 대응과 달리, 우리나라는 코로나 첫해인 2020년 진단시약 등 민간 바이오 기업의 활동을 집중 홍보하면서, ‘게임 체인저’인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 지원에는 손 놓고 있었다.
그러다, ‘2021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에 2,627억 원, 2022년에는 5,265억 원을 예산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시기적으로 늦었을 뿐만 아니라, 투입예산의 규모면에서도 선진국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개념 정의가 존재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국가가 새로운 지식축적과 국민을 위한 기술혁신을 촉진하는데 지원하는 예산이다.
2021년도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는 전년도 대비 13.1%(3.2조원) 증가한 27.4조원이다. 10년 전인 2012년 16.0조원에서 매년 평균 4.4% 증가하여, 올해 정부 전체 예산 529.3조원 대비 5.2% 수준이다.
총 규모에서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이며, GDP 대비 투입 비율은 독일(0.98%), 핀란드(0.84%), 일본(0.77%)보다 높은 1.04%로 전체 OECD 국가 중에서 단연 1위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연구개발 성과는 손꼽을 정도이다.
세계적 석학 칼 포퍼 교수는 인간의 삶을 “모든 삶은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이다”고 정의했다. 일반인들은 보통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그러나 천재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insight’는 ‘sight’에 ‘in’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통찰력’이란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정부 연구개발 투자에서도 보통의 국가들은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주목한다. 보이는 것은 일상에서 항상 느끼므로, 문제를 파악하기도 쉽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일상에서 쉽게 느껴지지 않으므로, 문제로 정의되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구개발에서 성과가 잘 보이는 분야는 먹고 사는 것과 관련이 깊은 경제·산업기술 분야이다. 이런 기술들은 이미 선진국의 기초연구에 의해 기반이 닦아진 것으로 모방개발을 하거나 응용연구를 하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40여 년 동안, 이런 세계 최고 기술을 따라잡은 ‘Fast-Follower’ 전략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세계 경제부국으로 압축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천문, 우주, 해양, 기후변화, 감염병 등 인류의 영속적 환경에 대한 연구개발은 잘 보이지 않는 분야이다. 인류에게 아직도 미답인 기초연구 분야가 여기에 속한다.
또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중간에 있는 것이 공공영역이다. 공공영역은 개개인 혼자로는 해결할 수 없지만, 대규모 정부투자 기술개발을 통하여 다수의 편익을 추구할 수 있는 분야이다.
지난 10월 우리나라는 독자 개발한 우주 발사체 누리호를 목표 고도 700㎞까지 도달시켰다. 1978년 고체 로켓 발사체 기술을 이용한 ‘백곰’ 미사일을 세계 7번째로 독자 개발한 지, 43년이 지나서야 액체 로켓 발사체를 포함하는 인공위성 기술의 전주기 기술을 겨우 확보한 것이다. 우주분야도 당장은 잘 보이지 않는 분야이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을 제외한 개발도상 국가들은 쉽사리 이런 분야 기술개발에 투자하려고 나서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이제서야 인공위성 기술을 자립하게 된 것도 국가의 경제력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의 과학 교육 교과서에 실린 우주의 성간·성운의 사진, 심해저에 대한 기록 중 우리나라가 개발한 우주망원경이나 심해저 잠수정으로 촬영한 영상은 하나도 없다. 모두 외국의 자료를 인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들이 배우는 과학지식과 기록의 거의 대부분은 국내 과학기술자들의 업적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연구개발 기술투자 세계 5위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 1조 6,309억 달러로 세계 10위, 반도체 수출액·조선 수주실적,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 국가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땅에서 불굴의 의지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고, IMF 외환위기를 딛고 이를 경제·사회적 도약의 기회로 만들었다.
그러나, ‘삶의 질 만족도’는 2018년 OECD 40개국 중에서 30위로 하위권이다. 즉, 국민 개개인은 잘 살게 되었지만, 삶의 질은 향상되지 않고, 국민이 국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연구개발은 국가 안보·정치·경제·사회의 문제를 과학기술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제공하는 과정이다.
지난 50년 동안 경제·산업 개발, 잘 사는 것 중심으로 해답을 찾는 연구개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잘 살게는 되었지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공공기술개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개발, 더 나아가 인류의 가치와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로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