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WMO 보고서는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고영향 기상·기후 사건(high-impact events)을 통해 기후재난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2025년 3월의 대형 산불, 7월의 집중호우, 8월의 극심한 가뭄까지, 한 해 동안 이어진 연속적 기후충격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난의 양상이 달라지는 지금의 현실은, 기후위기가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 리스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한반도 역시 이러한 변화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복합재난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지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 재난은 단순히 기후변화라는 물리적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기온 상승, 강수 패턴의 변화, 극한기상의 증가와 같은 자연적 요인이 중요한 배경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피해의 크기와 양상은 지역별로 축적된 취약 구조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산림 관리의 미비, 도시의 불투수면 확대, 하천 주변의 개발 압력, 노후화된 기반시설은 모두 재난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지역 간 대응 역량의 격차까지 더해지면, 동일한 강도의 재해라도 피해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결국 재난은 자연과 사회가 맞물린 결과이며, 그 피해 역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기후재난은 단일 사건이 아닌 연쇄적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산불로 훼손된 산림은 토양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이후 집중호우 시 산사태와 토사 유출 위험을 급격히 높인다. 이어지는 가뭄은 이미 손상된 수자원 시스템의 회복을 지연시키며, 농업과 생태계 전반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연속적인 충격은 단순한 피해의 누적을 넘어,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한 번의 재난을 겨우 견뎌낸 공동체가 다음 재난을 준비할 여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난 대응 패러다임은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지금까지의 대응은 개별 사건 중심의 사후 복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피해가 발생하면 복구하고,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이러한 접근만으로는 반복되는 재난을 감당할 수 없다. 산불, 홍수, 가뭄을 각각 별개의 재난으로 분리해 대응하는 방식 역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물순환과 국토 이용 전반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재난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적 리스크 관리 체계는 단순히 여러 부처나 정책을 묶는 수준을 넘어선다. 기상, 수문, 토지이용, 생태, 사회경제적 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다차원적 접근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홍수 대응은 단순히 제방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상류 산림 관리, 중류 하천 공간 확보, 하류 도시 배수체계 개선, 지하수와의 연계 활용까지 포함하는 종합적 전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뭄 대응 역시 댐과 저수지에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지표수와 지하수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지역 맞춤형 수자원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전 대비 강화다.
기후위기의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재난이 올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미래를 맞추려는 접근에서 벗어나, 어떤 상황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곧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개념과 직결된다. 회복탄력성이란, 단순히 재난 이후 빠르게 복구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을 견디고 적응하며 더 나은 상태로 전환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경보 시스템의 고도화가 필수적이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별 특성과 취약성을 반영한 맞춤형 경보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동시에 취약지역에 대한 선제적 관리와 투자 역시 중요하다.
반복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구조적 개선을 통해 위험 자체를 낮추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이는 단기적인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피해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다.
또한, 물관리 측면에서는 지표수와 지하수를 연계한 유연한 대응체계가 요구된다. 홍수 시에는 유출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고, 가뭄 시에는 저장된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 물관리는 단순한 기술적 접근을 넘어, 제도와 정책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것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피해를 줄이는 사회’에서 ‘재난을 견디는 사회’로의 전환이다.
기후재난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지만, 그 피해의 크기와 양상은 우리의 선택과 준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올해 역시 어떤 수재해가 한반도에 닥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대응 방식으로는 미래의 재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대응을 넘어 대비로, 복구를 넘어 회복탄력성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현실적인 과제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다.